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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상수훈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 위르겐 몰트만

    2020년 06월 1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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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상수훈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모든 세대들이 직면해야만 하는 질문이며 각 세대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 자신의 답변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수 세기에 걸쳐 동일하게 산상수훈의 강력한 도전에 조건없는 철저한 제자도로 응답하는 공동체 흐름이 하나 존재해 왔다. 그들 중에 발데시안, 후스 운동, 아나뱁티스트들, 후터라이트, 메노나이트, 퀘이커 그리고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브루더호프의 목소리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들리고 있다. 예수님의 길에서 시간의 격차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과거의 형제 자매들은 마치 오늘 우리 곁에 있기나 한 것처럼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말 속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실제로 그들은 지금 우리 곁에 함께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이 새로운 도덕률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 나라와 참된 생명의 능력을 증거하는 하나의 선포라는 사실을 아놀드는 이 책에서 보여준다. 새로운 계명을 주시기 전에 예수님은 먼저 팔복을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제자도의 멍에를 씌우시기 전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신다. 아놀드는 또한 우리가 철저하게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이상적인 목표나 불필요한 시련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동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한다.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삶은 단순하고 분명하며 단호하다. 많은 의심과 타협과 반쪽짜리 진리와 미지근한 태도는 사라진다. 우리가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듯이, 나누어지지 않은 전적인 헌신으로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전혀 따르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놀드는 제자도와 공동체 생활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제자도의 삶을 살 힘과 피할 수 없는 저항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곳이 바로 공동체다. 제자도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갈 형제들과 자매들을 만나게 된다. … 여전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쓰는 우리의 제도권 교회가 이처럼 철저한 기독교 공동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나는 자문해 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들을 그동안 스스로 던져왔다. 어떻게 하면 제도화된 기존 교회가 살아있는 공동체적 교회로 변화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가 믿음과 삶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우리가 미래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로 가는 것을 본다. 우리는 세상을 경멸하는 독선적인 기독교 분파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열린 교회를 갈구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가난한 자들과 장애인들과 버림받은 자들에게 열려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발견하기 때문에 피난처를 찾고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아놀드는 기독교 소망의 현실성을 상당히 강조한다. 그리스도인은 내세의 영혼 구원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한다. 아놀드는 이 다가오는 나라를 ‘하나님의 장래 나라’라고 자주 부른다. 신약성경에서처럼 그는 ‘하늘의 도성’을 얘기한다. 그는 이 지상에 임할 나라를 정치적인 용어로 얘기한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데, 만약에 내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다면 이 지구를 생태파괴와 전쟁과 원자폭탄의 공포에, 그리고 그런 위협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자들에게 내맡길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있다면 나는 문명의 진보와 원자력 발전소로 인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우리 인간이 죽어가는 것을 그냥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기도는 지구의 파괴에 대해 단호하게 저항할 것을 요구한다.

    아놀드는 한때 브루더호프를 ‘하나님 나라의 한 씨앗’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 씨앗은 사도들이 말한 땅에 묻힌 씨앗 한 알처럼 나치 시절에 ‘죽었다’. 하지만 이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었고 지금도 맺고 있다. 이것은 적지 않은 희망이다. 믿음 위에 세워진 모든 공동체들처럼 브루더호프는 때로 매우 어둡게 보이는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다. 이제는 그들이 더 이상 ‘됫박 아래 놓여(마 5:15)’ 숨겨져 있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더 많이 받게 되기를 기원한다.


    이 글은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이 에버하르트 아놀드의 《소금과 빛》을 추천한 글에서 일부 인용했다.

    salt in a wooden spoon
    a girl in a pink dress with a bamboo fishing pole by a pond

    쟁기출판이 브루더호프 출판사라는 걸 아세요? 백 주년 기념집(영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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